역사 / / 2023. 1. 21. 17:06

옛 선조들의 전통적인 결혼 준비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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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의 예시

혼담, 중매인

남녀가 혼인할 나이가 되어 일가친척들 사이에 혼인말이 오가면 상대방을 구하기 위해 서로 의논하고 중매인을 통해 양가의 의사를 알아보게 한다. 이러한 과정을 가례에서는 의혼이라고 했으나 실제 민간에서는 혼담이 오간다고 한다. 혼기에 이른 자녀가 있는 집에서는 중매인을 놓게 되는데 이 중매인을 남자인 경우 중신아비, 중매제비라고 부르며, 여자인 경우는 중신어미, 중신할미 또는 매파라고 불렀다, 규수 및 신랑 당사자의 집안, 성격, 형제관계, 가업, 성씨, 친척 등을 수소문할 때 굳이 남녀를 가리지는 않았다. 선을 볼 때에는 시어머니나 시고모가 될 사람이 그 집에 찾아가서 신붓감을 만나보기도 하고 간선이라 해서 지나가는 사람인 체하면서 신붓감의 생김새와 동태를 엿본다.

사주 보내기

양가가 혼인하기로 결정한 후 약혼의 징표로 삼는 것이 사주를 보내는 것이다. 사주는 신랑 측에서 좋은 날을 택해서 중매인을 통해 보내거나 같은 마을 사람 중에서 결혼해서 첫아들 낳고 깨끗하고 가정이 좋은 사람을 골라 청혼서와 함께 보내기도 한다. 사주를 보내는 날은 신랑, 신부의 연령을 고려하여 살진 날을 제외하고 일진과 방위를 보아 손없는 날을 골라서 보냈다. 양가에서 일단 정혼하기로 서신을 주고받은 후에 사주를 보내는 지방도 있고 청혼한 후에 사주를 보내는 지방도 있으며 곧바로 사주를 보내서 혼인을 정하기도 한다. 또는 신랑집에서 허혼서와 사성을 신부집에 보내면 신부집에서 택일하여 보낸다. 천혼서와 허혼서는 식자층에서 주로 주고받았지만 실제로 민간층에서도 그 뜻을 알지 못하면서도 동네 어른에게 부탁하여 혼서지를 하나의 격식으로 주고받는 예가 많았다. 이때 사주의 작성은 간지를 7번 또는 5번을 접어서 그 한가운데에 신랑의 사주, 즉 태어난 해와 달, 날짜, 시간의 네 기둥을 적은 후 봉투에 넣어 삼가 봉한다는 뜻의 근봉이라는 두 글자를 쓰고 앞면에 사주라고 적는다. 그리고 수숫대나 싸릿대를 반으로 쪼개어 봉투를 그 속에 끼우고 양쪽 끝을 청홍실로 감는데 위에서 밑으로 또 밑에서 위로 감고서 끝 매듭은 동심결로 맺는다. 또 이 사주는 귀퉁이에 청홍실의 술을 단 청색, 홍색의 겹으로 만든 사주보자기에 청색이 겉으로 드러나도록 싸서 보낸다.

택일

사주를 받는 답례로 신부집에서 신랑집에 택일을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지역에 따라 택일을 날받이라고도 하고 '연길'이라고도 한다. 날받이를 싸는 보자기는 날받이라보라고 한다. 택일은 여자집에서 남자집으로 허혼서와 같이 보내나 부득이한 경우 남자집에서 택일을 보낼 수도 있다. 그러나 지방에 따라 반대로 택일을 남자집에서 여자집으로 보내는 경우도 있다. 또 어떤 집안에서는  택일을 전안, 납폐, 연월일시 이외에 혼인날 신랑, 신부가 앉을 방위와 만나서 아니 될 사람까지도 적어 넣는 예가 있다. 강원도 여랑에서는 택일할 때 보통 혼목이라 하여 광목이나 옥양목을 선의에 따라 한 통 정도 사서 신부집에 시간과 함께 보낸다. 이 옷감으로는 속옷, 시부모의 토시, 버선 등을 만들어 나간다. 경남 옥동에서는 남자집에서 여자집으로 날받이를 보내는 날 혼물이라 하여 신부옷감, 이불감, 패물을 보낸다.

신부집에서 올리는 대례

혼례의 준비단계에서는 중매인을 통하여 혼담이 오고 가고 신랑가에서 사주를 신부집에 보내 청혼하면 신부집에서는 이에 택일하여 답한다. 이어서 신랑은 대례를 올리기 위해 집을 떠나는데 이를 초행이라 하며 신부집에 가서 대례를 올리고 신방을 치른 뒤 신부를 신랑집에 데려오기까지의 과정으로 전안례, 교배례, 합근례의 순서를 거친다. 초행을 떠나기 앞서 별고사부터 시작해서 초행하여함을 전하고 대례를 올리면 혼인 후 의례가 이루어진다.

고사당, 문제, 손비비기

신랑은 혼인날이 되면 신부집으로 떠나기 전에 조상에 고사를 지낸다. 혼례날 출발 직전에 조상에게 고유하는데 형식에 따라 축문을 읽는다. 경남지역 옥동의 경우는 신랑이 집을 떠나기 전에 시를 맞추어 아침 일찍 앞마당에 병풍을 치고 밥, 술, 고기를 상에 차리고 다시 절하며 조상에게 알리고 떠난다.

가신신앙의 하나인 문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과 당골무당을 불러 손비비는 의례의 모습은 유교적인 요소가 도입되기 이전의 우리나라 혼인의례의 원초적인 형식으로 파악된다. 미혼의 신분에서 기혼의 신분으로 전환하게 되는 대례를 앞두고 행하는 분리의례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복을 받고자 하는 바람의 표현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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